가이다 도모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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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이다 도모유키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였다. 히로시마현립 가모고등학교와 고마자와 대학을 거쳐 일본 생명에서 활약하다가 2011년 오릭스 버팔로스에 입단했다. 2012년 프로 데뷔 후 2022년까지 오릭스에서 뛰었으며, 2019년에는 셋업맨으로 활약하며 개인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2022년 전력 외 통보를 받고 은퇴 후에는 야구 지도자와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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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다 도모유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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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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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명 | 가이다 도모유키 |
로마자 표기 | Tomoyuki Kaida |
한자 표기 | 海田 智行 |
가나 표기 | かいだ ともゆき |
선수 정보 | |
소속 구단 | 히메지 이글레터스 |
역할 | 감독 |
등번호 | 47 |
출신지 | 히로시마현미하라시 |
신장 | 179 |
체중 | 85 |
利き腕 | 왼손 |
타석 | 좌타 |
수비 위치 | 투수 |
드래프트 순위 | 드래프트 4위 |
첫 출장 | 2012년 4월 1일 |
마지막 출장 | 2021년 10월 19일 |
선수 경력 | |
고등학교 | 히로시마현립 가모 고등학교 |
대학교 | 고마자와 대학 |
실업팀 | 일본 생명 |
프로 구단 | 오릭스 버펄로스 (2012 - 2022) |
감독 경력 | |
구단 | 히메지 이글레터스 (2024 - ) |
2. 선수 경력
히로시마현립 가모고등학교 시절에는 에이스가 된 2학년 가을 주고쿠 지방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 3학년 여름에는 히로시마현 예선 8강에서 탈락했다.
고마자와 대학에 진학 후, 야구부에서는 1학년 봄부터 리그전에 등판했다. 가을에는 마스이 히로토시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서 2승을 거두며 리그 2위인 방어율 2.01을 기록했다. 2학년부터 에이스가 되어 봄에는 13경기 중 10경기에 등판하여 5승을 올렸다. 리그전 후, 제36회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좌완 중간 계투로 등판하여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2학년 가을부터 3학년 봄까지는 컨디션 난조로 승리 없이 끝났고 팀도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이후 1부 리그 승격은 이루지 못했지만, 2부 리그 3시즌에서 10승을 거두었다. 1부 리그 통산 성적은 30경기, 7승 9패, 방어율 3.09이다.
대학 졸업 후 일본 생명에 입사하여 일본 생명 야구부 1년차인 2010년에는 봄부터 공식전에 등판했다. 제81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의 한와 지구 2차 예선에서는 선발 · 중간 계투로 6경기에 등판하여 대표권 획득에 기여했다. 2011년 10월 27일, 제82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 2회전 도시바 전에서는 9회 2사에서 강판되어 완투를 놓쳤지만, 아다치 료이치가 이끄는 타선을 1실점으로 막아 승리를 거두었다.[1] 같은 날 열린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오릭스 버팔로스로부터 4순위 지명을 받았다.
2012년 가와바타 타카요시와 함께 개막 1군에 합류했다. 개막 3번째 경기에서 프로 첫 등판을 했지만, 첫 대결 타자인 마츠나카 노부히코에게 볼넷을 내준 것만으로 강판되었고, 4월 6일에 등록 말소되었다. 같은 달 17일에 재등록되어, 비하인드와 패전 처리 상황에서 등판 기회를 얻었다. 9월에 들어서 선발 기회를 얻어, 같은 달 2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25번째 생일에 프로 첫 선발을 맡아 다나카 마사히로와 맞대결을 펼쳐 7이닝 무실점의 호투를 했지만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이후 4경기에서도 선발로 나섰지만 모두 패전 투수가 되었다. 구원 투수 2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12를 기록한 반면, 선발에서는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4.43을 기록했다.
2013년 시즌 3번째 선발 등판이었던 4월 17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막아, 프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2]。 7월 4일 세이부전에서 5패를 기록한 후에는 중간 계투로 전환되어, 롱 릴리프와 원 포인트로 기용되었다. 중간 계투에서는 평균자책점 1점대를 기록했다. 우타자를 상대로 한 피안타율은 .339였다.
2014년에는 19경기에 등판해 1패, 평균자책점 7.58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자기 최고 기록인 48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2.61, 10HP를 기록했다.
2016년에도 자기 최고 기록인 50경기에 등판하여, 15HP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2.78로 2년 연속 2점대를 기록했다.
2017년 3월 16일, 4살 연하의 일반 여성과 결혼했다. 시즌에서는 12경기 등판에 그쳐 0승 1패 평균자책점 5.91을 기록했고, 8월 말에는 왼쪽 팔꿈치 관절 유리체 제거 및 클리닝 수술을 받았다. 900만 엔 감액된 연봉 2,750만 엔으로 계약했다.
2018년에는 수술의 영향으로 인해 4경기에만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13.50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2019년에는 자기 최다인 55경기에 등판하여 셋업맨으로서 평균자책점 1.84, 22HP를 기록, 작년 연봉의 거의 두 배가 되는 2,050만 엔 증액된 연봉 4,150만 엔으로 계약했다[3]。
2020년에는 전년과는 달리 단 6경기 등판, 0승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14.54로 마쳤고, 감액 제한을 초과하는 47% 삭감된 연봉 2,200만 엔(추정)으로 계약을 갱신했다[4]。
2021년에는 16경기 등판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자책점 2.61을 기록하며, 9월 이후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이던 팀을 불펜에서 지원했다[5]。
2022년에는 시즌 내내 1군 등판 없이, 10월 5일에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11월 8일에 열린 12개 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지만, 한신 타이거스로부터 타격 투수 제안이 있었을 뿐, 다른 오퍼는 없어 은퇴를 결심했다. 전력 외 통보부터 현역 은퇴까지의 모습은, 12월 27일 TBS계열에서 방송된 『프로 야구 전력 외 통보 2022』에서 소개되었다[6]。
2. 1. 프로 입단 전
히로시마현립 가모고등학교 시절에는 에이스가 된 2학년 가을 주고쿠 지방 고등학교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 3학년 여름에는 히로시마현 예선 8강에서 탈락했다.고마자와 대학에 진학 후, 야구부에서는 1학년 봄부터 리그전에 등판했다. 가을에는 마스이 히로토시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서 2승을 거두며 리그 2위인 방어율 2.01을 기록했다. 2학년부터 에이스가 되어 봄에는 13경기 중 10경기에 등판하여 5승을 올렸다. 리그전 후, 제36회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좌완 중간 계투로 등판하여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2학년 가을부터 3학년 봄까지는 컨디션 난조로 승리 없이 끝났고 팀도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이후 1부 리그 승격은 이루지 못했지만, 2부 리그 3시즌에서 10승을 거두었다. 1부 리그 통산 성적은 30경기, 7승 9패, 방어율 3.09이다.
대학 졸업 후 일본 생명에 입사하여 일본 생명 야구부 1년차인 2010년에는 봄부터 공식전에 등판했다. 제81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의 한와 지구 2차 예선에서는 선발 · 중간 계투로 6경기에 등판하여 대표권 획득에 기여했다. 2011년 10월 27일, 제82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 2회전 도시바 전에서는 9회 2사에서 강판되어 완투를 놓쳤지만, 아다치 료이치가 이끄는 타선을 1실점으로 막아 승리를 거두었다.[1] 같은 날 열린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오릭스 버팔로스로부터 4순위 지명을 받았다.
2. 2. 오릭스 버펄로스 시절
2012년 가와바타 타카요시와 함께 개막 1군에 합류했다. 개막 3번째 경기에서 프로 첫 등판을 했지만, 첫 대결 타자인 마츠나카 노부히코에게 볼넷을 내준 것만으로 강판되었고, 4월 6일에 등록 말소되었다. 같은 달 17일에 재등록되어, 비하인드와 패전 처리 상황에서 등판 기회를 얻었다. 9월에 들어서 선발 기회를 얻어, 같은 달 2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25번째 생일에 프로 첫 선발을 맡아 다나카 마사히로와 맞대결을 펼쳐 7이닝 무실점의 호투를 했지만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이후 4경기에서도 선발로 나섰지만 모두 패전 투수가 되었다. 구원 투수 2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12를 기록한 반면, 선발에서는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4.43을 기록했다.
2013년 시즌 3번째 선발 등판이었던 4월 17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막아, 프로 첫 승리를 거두었다[2]。 7월 4일 세이부전에서 5패를 기록한 후에는 중간 계투로 전환되어, 롱 릴리프와 원 포인트로 기용되었다. 중간 계투에서는 평균자책점 1점대를 기록했다. 우타자를 상대로 한 피안타율은 .339였다.
2014년에는 19경기에 등판해 1패, 평균자책점 7.58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자기 최고 기록인 48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2.61, 10HP를 기록했다.
2016년에도 자기 최고 기록인 50경기에 등판하여, 15HP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2.78로 2년 연속 2점대를 기록했다.
2017년 3월 16일, 4살 연하의 일반 여성과 결혼했다. 시즌에서는 12경기 등판에 그쳐 0승 1패 평균자책점 5.91을 기록했고, 8월 말에는 왼쪽 팔꿈치 관절 유리체 제거 및 클리닝 수술을 받았다. 900만 엔 감액된 연봉 2,750만 엔으로 계약했다.
2018년에는 수술의 영향으로 인해 4경기에만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13.50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2019년에는 자기 최다인 55경기에 등판하여 셋업맨으로서 평균자책점 1.84, 22HP를 기록, 작년 연봉의 거의 두 배가 되는 2,050만 엔 증액된 연봉 4,150만 엔으로 계약했다[3]。
2020년에는 전년과는 달리 단 6경기 등판, 0승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14.54로 마쳤고, 감액 제한을 초과하는 47% 삭감된 연봉 2,200만 엔(추정)으로 계약을 갱신했다[4]。
2021년에는 16경기 등판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자책점 2.61을 기록하며, 9월 이후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이던 팀을 불펜에서 지원했다[5]。
2022년에는 시즌 내내 1군 등판 없이, 10월 5일에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11월 8일에 열린 12개 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지만, 한신 타이거스로부터 타격 투수 제안이 있었을 뿐, 다른 오퍼는 없어 은퇴를 결심했다. 전력 외 통보부터 현역 은퇴까지의 모습은, 12월 27일 TBS계열에서 방송된 『프로 야구 전력 외 통보 2022』에서 소개되었다[6]。
2. 3. 은퇴 후
은퇴 후에는 캠핑 용품 판매와 오센틱 바 개점을 준비하는 한편,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로도 활동할 예정이다.[7] 일본 생명의 선배이기도 한 오릭스 코치 시모야마 신지의 소개로 사회인 클럽팀을 중심으로 초등부나 중등부 등 소년 야구도 운영하고 있는 칸메디 베이스볼 아카데미의 코치로 취임했다.[8][9] 중등부를 담당하며, 2023년 1월 14일부터 팀에 합류하여 지도를 하고 있다.[8][9] 이와 동시에 오릭스 OB로서 J SPORTS의 야구 해설자로도 활동했다.2023년 6월 20일, 간사이 독립 리그에 새롭게 가맹이 승인되어 2024년부터 리그전에 참가하는 히메지 이글레터스의 감독으로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10]
3. 상세 정보
3. 1. 개인 기록
가이다 도모유키의 첫 등판은 2012년 4월 1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경기(후쿠오카 돔)에서 8회말에 2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하여 1볼넷 1실점을 기록한 것이다. 첫 탈삼진은 2012년 4월 24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미야기 구장)에서 6회말에 히지리사와 료로부터 헛스윙 삼진을 기록했다. 2012년 8월 2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경기(군마 현립 시키시마 공원 야구장)에서 10회말에 4번째 투수로서 구원 등판하여 2/3이닝 무실점으로 첫 홀드를 기록했다. 2012년 9월 2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경기(일본제지 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에서 첫 선발 등판하여 7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으나 승패는 없었다. 첫 승리 및 첫 선발 승리는 2013년 4월 17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경기(세이부 돔)에서 6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달성했다.3. 2. 등번호
가이다 도모유키는 2012년부터 등번호 47번을 사용하고 있다. 2022년까지 사용하다가 2024년부터 다시 47번을 사용하고 있다.3. 3. 연도별 투수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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